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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명 |
박사공 9세 군위공(휘 이경) 산소 |
사적명 |
추원재(군위공 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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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 |
소재지 |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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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 |
교통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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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安福(안복) 병조정랑/증 병조참판 |
형-利纘(이찬) 利仁(이인) 利誠(이성) 동생- 利順(이순) 利行(이행) 利興(이흥) 利溫(이온)◇ 利恭(이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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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敬(이경)◇<박사공 9세/1-163><통계공파> ?∼1468, 1459년(세조 5) 기묘식년(己卯式年) 진산(進士)에 입격<아들 漢(한)의 문과방목에 의거>하여 남이(南怡)와 더불어 여진을 토평하고 돌아와 1469년(예종 1)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제수받고 적개공신 남이(南怡)의 집에서 활을 쏘는 등 남이와 교분이 두터웠으나 이것이 화근이 되어 남이가 역모에 연루되자 가산을 적몰당하고 함께 처형당했다.<왕조실록 8집 285, 286, 289면, 488면> 1470년(성종 1) 4월 22일 . 대비(大妃)가 전지하기를, “강이경의 동산(同産)들은 나의 족친(族親)이므로 석방한 것이다. 이것은 예전 예가 있다.” 하였다.<왕조실록 8집 490 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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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 |
숙인 거창 愼氏(신씨), 아버지는 이조판서 후갑(後甲) 조부는 참판 기(幾), 증조부는 참찬 양렬공 이충(以衷), 외조부는 목사 증 영의정 능성 구양(具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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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 화장산 동쪽 산기슭 자좌(子坐)에 합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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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漢(한)◇판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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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
趙玉(조옥) 참판, 아들은 판서 석정(석廷) 李繼義(이계의) 부사, 아들은 윤겸(允謙), 사위는 김주국(金柱國) 金世幹(김세간) 아들은 일선(日善), 일신(日新), 사위는 부장 박무(朴茂) 柳亨樑(유형량) 첨사, 아들은 사정(思汀), 사위는 이숭로(李崇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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