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安福(안복) 증병조참판

 형-利纘(이찬)◇ 利仁(이인) 利誠(이성) 利敬(이경)◇ 利順(이순) 利行(이행) 利興(이흥) 利溫(이온) ◇

 利恭(이공)◇<박사공 9세/1-212><통계공파>

  1470년(성종 1) 금천현감(衿川縣監), 그후 동부주부(東部主簿)를 지내고 1475년(성종 6) 무관직으로 옮겼다가 1477년(성종 8) 정유춘장(丁酉春場)에 생원(生員)에 입격<왕조실록 11집 627면>하고 돈녕부 판관(敦寧府 判官)을 역임했다. 1503년(연산 9) 7월 사산감역(四山監役)에서 주부(主簿)로 승진했다. <왕조실록 13집 569면, 14집 510면> 

배위

공인 남양 洪氏(홍씨),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임(任), 조부는 판관 정(淀), 증조부는 진사 척(陟), 외조부는 군수 증 영의정 양천부원군 양천 허손(許蓀) 

 

묘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에 있었으나 실전하여 1987년 선영에 단을 세웠다. 

 

아들

湜(식) 한성부판관, 洧(유) 충무위 부사직

사위

權光(권광) 안동인, 아버지는 현감 흡(洽), 아들은 기(璣), 종(琮), 사위는 이익(李翊)

李公柱(이공주) 성주인, 사위는 윤자의(尹自儀)

柳渥(유악) 전주인, 아들은 진사 효찬(孝纘), 사위는 엄장(嚴暲), 이황(李潢), 강팽(姜澎)

李善根(이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