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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利纘(이찬)◇ 증영선군(永善君) |
형-漬(지) 소정공(昭靖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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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박 10세-통계공파> 사직공(司直公) 무과에 급제하여 1517년(중종 12) 11월 화량첨사(化梁僉使)를 지냈다.<왕조실록 15집 354면> 그후 절충장군(折衝將軍) 행 사직(司直)을 지냈으며 연산 때 화를 피해 진주로 내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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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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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아버지 묘 아래 상석과 단비를 세웠다. 16대손 신홍(信洪)이 단비문을 짓고 글씨는 방후손 성균관 의전위원장 정희(正熙)가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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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世明(세명) 교수, 世璉(세련) 목사, 世璣(세기) 목사, 世琳(세림) 만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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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
孫蘭秀(손란수) 무과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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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절제사-조선 시대에, 절도사(節度使)의 지휘 아래 있던 종삼품의 군직. (준말)첨사
화량진-남양부(지금의 화성시)에 속함
사직-조선시대의 오위(五衛)의 정5품 관직